〈짐승들〉은 유괴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LA 시장 선거를 앞둔 마크 킴볼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아들이 납치됐다는 겁니다.
돈을 준비해야 하고, 경찰에 알릴지도 결정해야 하고,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도 찾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납치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정말 궁금해하는 건 범인이 누구냐보다 다른 쪽에 있습니다.
아들의 목숨이 걸린 순간에도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부부는 과연 같은 편일까.
벤 애플렉은 이 작품을 연출하고 공동 각본을 쓰면서 주인공 마크까지 직접 연기했습니다. 아내 애비게일 역은 케리 워싱턴, 여기에 질리언 앤더슨과 스티븐 연 등이 함께 출연합니다. 러닝타임은 1시간 48분이고 현재 한국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납치됐는데 돈부터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마크는 평범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LA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인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좋은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많은 사람 앞에서 정의와 책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선거를 치르는 데 들어간 돈 때문에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납치범은 돈을 요구하지만 마크에게 있는 모든 돈을 그냥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거, 후원금, 정치적인 이해관계, 주변 사람들.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에 정치인의 현실이 계속 끼어듭니다.
저는 이 설정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에서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면, 이 영화에서는 돈을 마련하는 순간 무엇이 무너질 수 있느냐까지 같이 따라옵니다.
마크가 가진 힘이 많아 보였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그 힘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가 시작되는 건 부부가 서로의 비밀을 꺼낼 때입니다
납치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마크와 애비게일은 당연히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사건을 해결하려면 두 사람이 그동안 서로에게 숨겼던 것까지 하나씩 꺼내야 합니다.
Netflix가 공개한 작품 소개에서도 이 영화의 중심을 단순한 유괴 사건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이 가면을 벗고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가에 두고 있습니다. 벤 애플렉 역시 인물들에게 전형적인 영웅이 따로 있는 구조가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이 각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계속 달라지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게 영화 분위기를 꽤 불편하게 만듭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도 지금은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아들을 먼저 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부부는 상대를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이 상황이 납치범보다 더 긴장됐습니다.
밖에 있는 적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가 더 궁금해지거든요.
마크는 좋은 아버지와 좋은 정치인 사이에서 계속 흔들립니다
마크가 시장 후보라는 설정도 단순한 배경은 아닙니다.
정치인은 사람들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가족인지, 어떤 지도자가 될지를 보여줘야 하죠.
마크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납치되는 순간부터 그 이미지와 실제 행동 사이가 조금씩 벌어집니다.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 법만 따라서는 아들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정의를 말해왔지만 자기 가족이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벤 애플렉은 작품에 대해 사람들이 실제로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행동하는지, 아니면 먼저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 다음 그 선택이 옳았다고 설명하는 건지를 묻는 이야기라고 밝혔습니다.
이 질문이 꽤 날카롭습니다.
사람은 남의 문제에는 원칙을 말하기 쉽습니다.
근데 자기 가족이 걸리면 그 원칙을 그대로 지킬 수 있을까요.
마크는 바로 그 시험대 위에 올라갑니다.
애비게일이 단순히 옆에서 불안해하는 아내로 끝나지 않습니다
케리 워싱턴이 연기한 애비게일도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납치된 충격에 빠진 어머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애비게일에게도 마크가 몰랐던 부분이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선도 계속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한 가족을 공격한 외부의 범죄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건이 원래부터 금이 가 있던 관계를 강제로 열어버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느냐도 중요하지만, 이 일이 끝난 뒤 이 부부가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벤 애플렉 역시 이 작품을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서로의 삶을 묶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관계 안에서 어떤 타협과 거래가 생기는지를 스릴러 구조 안에 넣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짐승들〉을 단순한 유괴 영화보다 결혼생활까지 같이 흔드는 스릴러로 보는 쪽이 더 잘 맞았습니다.
스티븐 연이 등장하면 상황이 한 번 더 복잡해집니다
스티븐 연도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마크의 주변에서 움직이는 인물이기 때문에 사건이 커질수록 그의 위치도 중요해집니다.
이 영화는 누가 완전히 선하고 누가 완전히 악한지를 일찍 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물이 하나씩 더 들어올 때마다 “이 사람은 어느 편이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그 질문 자체가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자기에게 중요한 것이 있고, 그걸 지키려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Animals, 한국 제목이 〈짐승들〉인 것도 이 지점에서 꽤 직설적으로 느껴집니다.
평소에는 사회적 위치와 체면, 도덕 같은 걸 가지고 살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는 결국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걸 지키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누가 짐승인가를 한 명 정해주는 제목이라기보다 위기 속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화려한 LA가 배경인데 분위기는 계속 답답합니다
촬영은 LA와 그 주변에서 진행됐고, 제작진도 도시 자체가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야경도 있고, 좋은 집도 있고, 정치 행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LA는 이상하게 편안하지 않습니다.
마크 가족이 가진 삶은 겉으로는 아주 안정돼 있는데, 납치 전화 한 통이 걸려오자 그 안정이 얼마나 얇았는지가 바로 드러납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해야 할 장소인데 계속 누군가의 시선과 전화, 비밀이 들어옵니다.
저는 이 대비가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어두운 골목과 범죄조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멀쩡해 보이는 삶이 안쪽부터 무너지는 방식이라 긴장감이 다르게 생깁니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짐승들〉을 끝까지 끌고 가는 질문은 결국 신뢰입니다.
마크는 아내를 믿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믿어야 하고, 둘은 주변 사람 가운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누군가의 말이 사실처럼 보여도 그 뒤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의심했던 사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주 빠르게 달리는 액션 스릴러와는 조금 다릅니다.
(Netflix 역시 작품을 어둡고 긴장감 있는 슬로 번 스릴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정보를 보여주면서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쪽입니다.
빠른 총격전보다 전화 한 통이나 표정 하나가 더 신경 쓰일 때가 많습니다.
결국 위기는 사람을 바꾸기보다 원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생각은 이겁니다.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원래 안에 있던 모습이 더 선명해지는 것 아닐까.
마크도 그렇고, 애비게일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가족, 사랑, 정의, 정치적인 신념 같은 말 뒤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선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결국 무엇을 먼저 고르는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목인 〈짐승들〉이 단순히 거칠거나 나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궁지에 몰렸을 때 자기 것을 지키려는 사람의 본능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누가 좋은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 한줄평
아들을 구하려고 시작한 한밤의 싸움이 결국 서로에게 숨겨왔던 진짜 얼굴까지 꺼내놓습니다.
〈짐승들〉은 유괴 사건 자체만 보면 익숙합니다.
아이가 사라지고, 돈을 요구하고, 부모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정치와 결혼, 돈, 비밀을 계속 끼워 넣습니다.
그래서 납치범의 정체만 기다리는 영화라기보다 한 가족이 위기에 몰렸을 때 어디까지 자기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벤 애플렉이 배우와 감독을 동시에 맡았다는 점도 눈에 들어오고, 케리 워싱턴과의 관계가 흔들리는 과정도 꽤 볼 만합니다.
화려하게 몰아치는 영화보다는 사람들이 숨겨둔 걸 하나씩 꺼내는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 Netflix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Netflix Tudum, Animals 공식 작품 소개
- Netflix Tudum, Animals 출연진 및 캐릭터 소개
- Netflix Tudum, Ben Affleck 인터뷰
- Netflix Korea, Animals 공식 시청 페이지
※ 본문 이미지는 작품의 분위기와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이며, 공식 스틸컷이 아닙니다.